|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면 약간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왕비의 출산 장면이 수많은 궁중식구들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점이다.
미리 귀띔을 하자면 실제 그녀의 출산은 궁중 식구들뿐만 아니라 파리의 시민들까지 들어와
‘단체 관람’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출산과 비교하자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에게 안정과 배려를 해주지 못할망정 소란스럽게 사람들을 불러
단체 관람을 시켰다니. 하지만 실제로 프랑스의 왕실에선 공개 출산이 당연한 출산절차였다.
17세기 프랑스 왕실에서는 ‘여왕’체제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왕이 후계자를 세우기 위해선 반드시 황태자를 얻어야 했다.
이로 인해 왕비들은 하나같이 아들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아무리 왕의 눈에 들어
왕비자리에 올랐어도 아들을 얻지 못하면 궁녀만도 못한 신세로 전락해 버리게 되었다.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진 왕비들은 딸을 낳을 경우를 대비해 바꿔치기할 남자 아이를
숨겨 놓는 일이 발생했다.
황태자의 피를 잇지 않은 아들이 프랑스를 통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이후 왕비의 부정을 막기 위해 그녀들의 분만과정을 왕실 식구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의 왕, 앙리 4세는 가뜩이나 수줍음이 많은 왕비의 출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왕비가 출산을 시작하게 되면 왕실 식구들이 모두 모여와 출산 장면을
강제로 목격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분만실엔 실로 엄청난 왕족 식구들이 몰려들었다.
왕의 직계 가족들은 물론 왕실의 공작들과 백작, 그들의 부인들과 왕의 형제자매들,
시중을 들어야 하는 귀족부인들이 모두 모여야 했다.
왕비의 출산을 보기 위해 모인 손님들은 고통에 찬 출산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 했고
그 중 나이가 어린 공작들은 그 충격으로 실신을 하거나 기절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아이의 머리가 왕비의 몸에서 반쯤 나왔을 때
태반에 쌓인 아이의 모습을 ‘돌아가며’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왕족들에겐 황태자의 탄생을 처음 목격하는 영광을 얻었다고 여겨야 했고 왕실의 자손이
바꿔치기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증인이 되어야만 했다.
이런 프랑스 왕실의 관례가 가장 혹독했던 시기는 1778년 12월 19일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왕비의 분만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집온 당일부터 혼자 즐겼던 모든 권한을 박탈당했다.
그녀가 밥을 먹을 때도, 옷을 갈아입을 때도, 남편과 동침을 할 때도 언제나 참관인이 따라 다니며
모든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파리의 시민들까지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하나의 관광 상품처럼 따라다니며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공개된 자신의 입장에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출산이 임박했을 땐 모든 산모들이 불안과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괴로워했던 것은 그녀의 적나라하게 벌려진 다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고
시장 통처럼 소란스러운 분만실이었다.
그녀가 분만한다는 소식을 들은 파리의 시민들이 왕실의 창문과 문 앞에 줄을 서서
그녀의 출산을 보고 있었다.
왕실에선 왕비의 체면을 위해 병풍으로 중요 부위를 가려주었지만 일부 몰지각한 관람객들은
가구 위로 올라가 병풍 너머의 출산 과정을 전부 목격했다.
분만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 분만에 필요한 물건을 옮기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 나라의 왕비가 장비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게 된 것이다.
결국 산통과 치욕감을 못 이긴 왕비는 출산 도중에 실신을 하게 되었고 그 사건을 끝으로
프랑스의 공개 출산은 막을 내렸다.
공개 출산은 왕비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왕비와 황태자비가 아들을 못 낳았을 경우를 대비해 대공의 부인들이 출산을 할 때도
가족들이 모두 모인 공개 출산을 했다.
산모의 안정이 분만에 중요하단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프랑스 왕실의 잔인한 관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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