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악처의 대명사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샨티페’를 아는가.
남편에게 온갖 구박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진 최고의 악처로 손꼽히는 크샨티페를 잇는
또 하나의 유명한 악처가 있다.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Tolstoi)의 아내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이다.
크샨티페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의 생활고를 못 이겨 뛰어난 남편의 사상을
온갖 말로써 짓밟았다면, 넉넉한 가정과 세계적인 명성까지 이루어낸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왜 내조의 여왕이 되지 못했던 걸까.
부부 사이가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말년에 톨스토이는 집 밖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아야 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톨스토이.
도대체, 그와 아내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젊었을 시절의 톨스토이는 한 마디로 철딱서니 없는 청년에 불과했다.
부유한 귀족의 자제이자, 몇 편의 작품이 유명해져 ‘작가’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그저 한량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하녀들과 먼 친척뻘의 고모를 유혹해 밤을 보내는 데만 집중했다.
그가 손에 쥔 돈에 의해 많은 여자들이 그를 따랐는데, 젊음을 여인들과 보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여인들의 가슴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그는 결혼 전에 하녀의 몸에서 아들을 얻기도 했다.
무분별한 성생활에 실증을 느낀 톨스토이는 서른을 넘기자,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품만큼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그의 욕심은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가진
친구의 딸에게로 뻗어갔다.
그녀가 바로 궁정 의사를 아버지로 둔 소피아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 열여덟.
톨스토이는 친구인 그녀의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3년 동안이나 동거했던 여인을 버리고
일주일 간 매일같이 그녀의 집에 찾아가 구애를 했다.
오랜 우정이 작용한 것인지, 귀족 집안과의 결혼을 반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톨스토이는 7일 만에 소피아와의 결혼을 허락받았다.
1862년 9월23일, 서른넷의 톨스토이와 열여덟의 소피아는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귀족집안의 규수로 정갈한 몸가짐을 교육받은 소피아는 유명한 작가를 남편을 맞이하면서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매우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첫날밤을 치르는 순간부터 둘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성(性)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신부는 수많은 경험을 치른 남편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톨스토이는 전혀 어린 신부를 배려하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는 남자가 주동자이며 지배자여야 하고, 여자는 마땅히 남편의 즐거움을 위해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첫날밤은 어린 소피아에게 섹스에 대한 공포감만 남기고 말았다.
계속되는 그들의 결혼생활에서도 섹스는 늘 소피아에게 고역이었다고 한다.
물론, 아내와의 섹스에 불만족스러웠던 톨스토이 역시 썩 기분 좋은 생활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둘 사이에서 열셋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어린 신부였던 소피아가 중년의 문턱을 넘어설 때까지 배가 늘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워낙 섹스를 좋아했던 톨스토이의 영향도 컸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던 그가 소피아에게 피임을 하지 말 것을 강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모성애’에 대한 집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을 절대 유모의 손에 맡기지 않았던 것이다.
소피아가 계속되는 출산과 육아에 지쳐 유모를 들이자고 해도,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모성애’를 강조했다.
결국, 소피아는 혼자 열셋의 아이를 감당해야 했다.
많은 아이들의 수유(授乳)를 도맡다보니 그녀의 풍만했던 가슴은 힘없이 늘어졌다.
그러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소피아의 모습을 보며 톨스토이는 늘 흐뭇해했다고 한다.
소피아는 남편의 작품을 직접 손보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톨스토이의 최악의 글씨체 때문에
남편의 작품을 일일이 교정하고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깨끗이 다시 적었던 것이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남편을 내조하던 소피아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톨스토이가 모스크바 빈민굴을 돌아본 후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일체의 사유 재산을
부정해 버렸던 것이다.
작가적 이상(理想)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생각이지만, 평생 귀족으로 살아온 소피아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처음으로 남편의 뜻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최악의 반항으로 말이다.
남편을 향한 히스테리와 발작, 호시탐탐 감시하는 그녀의 눈을 참을 수 없게 된 톨스토이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저작권을 자신과 사상이 일치했던 막내딸에게 넘겨버렸다.
이것은 소피아의 발작 행위에 불을 지른 격이 되어버렸고, 그녀는 자살소동까지 일으키게 된다.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 29일, 여든이 넘은 나이로 먼 여행길에 오른다.
그저 소피아의 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선 이 여행길에서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폐렴이 위중해져 어느 한 기차역의 역장 관사에 눕게 된 그는 소피아를 오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아들들에게 부탁을 하고 쓸쓸히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소피아의 악행으로 그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무리한 여행길을 떠나
죽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의 말에 순종적이던 원래의 그녀 모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온갖 힘든 일을 겪으며 내조를 했던 그녀에 대해 말년의 비뚤어진 모습 때문에
‘악처’로 평가 내려진 것은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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