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엄숙한 시대, 조선.
남존여비에 입각해 남아선호사상은 물론, 여인네는 지아비를 하늘처럼 여기고 따라야 했던
그 시절에 매 맞는 남편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중종 17년에 사대부가의 부인이 칠거지악 중 하나인 투기를 하여
남편을 못살게 한다는 이야기가 조정 대신들에 의해 논쟁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방 군수 허지의 아내 유씨였다.
유씨는 성질이 난폭하고 투기가 심해 남편과 언쟁을 벌이다 욕질과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녀의 성질에 대해서는 소문으로 일화가 전해졌는데, 어느 날 이웃 집 수탉이 암탉을 쫓다
유씨의 집으로 날아들자 그 수탉을 향해 ‘너의 집에도 암탉이 있는데도 이웃집 암탉을 쫓아다니니,
이는 허지의 모습과 같구나’라고 말하며 닭의 날개를 뽑고 사지를 분해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웃집 닭의 사지를 분해하라는 명을 내릴 정도로 독한 마음씨를 가진 유씨는 그 근방에서
무서운 여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결국, 유씨는 의금부에서 지아비에게 욕과 폭력을 행사한 것,
그리고 투기를 한 것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조정은 혼란스러움에 빠졌는데, 그녀에 처벌에 대한 의견이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양반가의 여인네가 하늘처럼 섬겨야 할 지아비에게 욕질과 폭력을 쓴 행태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과 그저 민가에 도는 소문일 뿐, 투기나 폭력에 대해
입증하기 어렵고 간음이나 남편을 살해하려 한 혐의도 없는데 어찌 사대부 여인을
감옥에 넣어 조사할 수 있는가 하는 의견이었다.
오랜 논쟁이 이어진 끝에, 조정에서는 ‘매 맞는 남편’인 허지에게
이혼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고 한다.
일평생 지아비를 섬기며 살아야 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인의 남편 폭력에 대한 소문은
꽤 오랫동안 조정을 술렁이게 했는데,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유씨의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유씨는 무서운 여인이었다기보다 외로운 여인이었다.
투기라는 것은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생기지 않는 마음의 감정이다.
양반의 법도를 익히며 자란 그녀 역시 칠거지악을 모를 리 없었다.
질투의 감정이 마음에 자리잡힐 수록 얼마나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을까.
안쓰럽지 않은가.
유난히 여인에게 정절이나 법도를 강조했던 그 시절, 참고 또 참았던 세월 속에
그녀의 감정이 폭발한 것이리라.
남편인 허지의 바람기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하던 외로운 나날을 보내는 동안,
암탉을 쫓는 수탉의 모습에서 자신의 남편을 봤을 때 어찌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겠는가.
남편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는 심정으로 닭의 사지 분해를 명했을 것이다.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옛 말이 있다.
하늘같은 남편에게 욕질을 해야만 했던 그 여인의 한(恨)은 누가 풀어줄 수 있었을까.
허지의 바람기를 추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유씨는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나
가슴에 상처를 품고 살아가야 하는 조선의 여인이었을 뿐이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이혼으로만 혼인을 무효 시킬 수 있었던, 그 법도(法度)의 굴레에서
한 번의 욕질과 매질로 자신의 한(恨)을 다스려야 했던 유씨.
그녀는 무서운 여자가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목말라 했던 가련한 여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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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모르는 여자만의 특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