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댕을 지독하게 사랑한 한 여자가 있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태어난 ‘카뮈 클로델’은 조각가를 꿈꾸며 파리에서 미술학교를 다녔는데
그녀가 19살이 되던 해 운명적인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당시 스승과 제자로 만난 운명의 사나이 로댕이었다.
당시 로댕의 나이는 42세로 이미 조각가로서 예술계에서는 확고한 명성을 쌓은 상태였고,
카뮈는 로댕을 향한 존경과 연모의 정을 쏟아 내었다.
로댕에 대한 예술적 동경으로 묘한 매력에 이끌린 카뮈는 로댕의 정열적이고 풍부한 재능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단순한 스승과 제자가 남녀관계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뮈로서는 로댕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미 명성 높은 강한 개성의 인물로 카뮈는 로댕이 요구하는 대로 정열적인 사랑에
빠져들게 되었다.
카뮈는 로댕의 아틀리에에 다니며 모델이 되기도 하고 제작을 거들기도 했다.
사랑에 빠지자마자 몸과 마음을 불태우며 차차 소녀에서 여자로 거듭나는 카뮈를 로댕은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 속에서 승화시켜 나갔다.
로댕의 작품 중, 명상, 새벽, 프랑스 등은 모두 그녀를 모델로 한 것이다.
로댕은 카뮈와의 사랑을 위해 ‘포리 누브르’라는 집을 빌려 공식적인 자리가 있을 때마다
그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카뮈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는데 이미 로댕에겐 다른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로댕의 무명시절 그를 극진히 돌봐주고 그의 아들까지 낳은 로즈 뵈레란 여자가 있었다.
로댕과 로즈와 20년 이상의 관계였으며 혼인 수속은 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로댕의 아내이자.
로댕의 여러 작품 속 모델이기도 하다.
이후 로댕에게 카뮈가 나타나면서 로즈는 더 할 수 없는 위기의식에 휩싸이게 된다.
카뮈와 로댕에겐 사랑이외에도 그녀가 들어갈 수 없는 조각이란 세계에서
굳게 맺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여자야 말로 남자가 거부할 수 없는 또 다른 사랑과
매력이 있다는 것을 로즈는 알고 있었다.
질투에 휩싸인 로즈는 두 사람의 사랑의 보금자리로 쳐들어가 카뮈와 치고받는 싸움을 벌였고,
그때마다 순수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카뮈는 로즈와 애인을 나눠 갖는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로즈와 카뮈는 로댕 앞에서 대결을 하여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다그쳤지만
불행하게도 로댕이 선택한 여자는 바로 로즈였다.
20년의 세월을 카뮈가 뛰어 넘기엔 너무 높았던 것이다.
카뮈는 질투와 울분으로 몸부림치면서 매일 밤 통곡을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더 이상 울거나 애원하여 로댕의 마음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혼자 이렇게 괴로워할 때 로댕은 착실하게 활동하여 거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카뮈도 그동안 샤쿤탈라, 왈츠 등의 몇 가지 작품을 창작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로댕의 작품과 너무 비슷하다며 그녀의 작품을 비난했다.
사랑과 일,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카뮈는 혼자 일어서기 위해 로댕을 떠나 아틀리에를 빌려
이사를 했다.
외톨이가 된 아틀리에는 그녀의 얼어붙을 것 같은 고독과 아름다움이 사라진
한 여자만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고독과 싸우고 사랑의 고통을 이겨내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어도
로댕의 모방이라는 빈정거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생활이 거듭되면 될수록 카뮈는 이상한 망상에 시달리게 된다.
카뮈는 주위사람들에게 “로댕이 나를 죽이려 한다.”며 아틀리에서도 옷도 갈아입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은 채, 애써 만든 조각품들을 망치로 부셔 버리는 난동을 부린다.
이 무렵 그녀가 남긴 회화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것은 손발을 묶인 로댕이 독방에 갇혀 있고
무서운 얼굴을 한 로즈가 기다란 비를 손에 들고 지키는 그림과
알몸인 로댕과 로즈가 서도 돌아앉아 엉덩이 부분이 서로 달라붙어 있어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이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로댕에서 벗어나지 못 한 카뮈는 48세가 된 후 아비뇽의 정신병원에
30년 동안 강제 수용된다.
결국 그녀가 죽은 뒤, 1988년 프랑스에서 이자벨 아자니 주연으로 그녀의 전기 영화가 상영되면서
아카데미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이후 세상은 카뮈 클로델에 대한 재평가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던 조각가로서의 명성은 카뮈 클로델이 죽은 지 40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인정받게 된 것이다.
불행한 여자 카뮈 클로델, 한 남자의 열정과 예술성을 사랑하고 인간적인 순수함으로
사랑을 바친 그녀의 불행한 삶의 조각들이 고스란히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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