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사이엔 여자들과 다른 우정과 의리의 세계가 있다.
물론 이렇게 남자 사이의 우정과 의리에 대해 남자가 여자보다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남자는 강하고 싶고, 어느 집단이든 소속되고 싶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때론 그런 것들이 우정과 의리라는 이름으로 더 힘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정에 얽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래전 신라시대에 있었던 일로 어느 시골에 짚신장수 광덕과 우산장수 엄장이란
두 친구가 살았다고 한다.
우산장수 엄장은 비가 와야지 돈을 벌었고, 짚신장수 광덕은 비가 오지 않아야 돈을 벌었지만
날씨와는 상관없이 두 사람의 우정은 매우 돈독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장수 엄장은 우산을 팔고 해가 어둑해질 무렵 광덕의 집 앞에 들어서면서
큰소리로 광덕을 불렀다.
광덕은 반가운 표정으로 엄장을 맞았고 광덕의 부인도 미소 띤 얼굴 로 엄장을 맞았다.
엄장의 손에는 우산 판돈으로 산, 생선 두 마리가 들려 있었는데 엄장은 그 생선을
광덕의 아내에게 건네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광덕의 아내가 엄장이 사 온 생선을 구워 밥상을 내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밥상 위에 는 온갖 약초로 빚은 반주도 놓여 있었다.
“그래 우산은 많이 팔았는가?”
“그럭저럭 다음 장날까지 밥값 정도는 벌었네.”
“다음 장날에 비가 오지 않으면 나도 짚신을 팔러 나가야겠네.”
“그날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을 팔 수 없으니 내가 자네 저녁을 지어야겠네.”
엄장의 말에 두 사람은 통쾌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랐으며 둘 다 불심이 깊어 불법 공부를 하고
심신을 닦는 일에 전념하다가 광덕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을 하였지만
엄장은 아직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 다.
“자네가 보기에 우리부부 사이가 어떤 것 같은가?”
광덕의 뜻밖의 말에 엄장은 당혹스러운 표 정을 지었다.
“우리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부부 사이가 아니라네.”
“아니 보통의 부부사이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와 나는 불법에 귀의하려고 하였으나 그 뜻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렇게 속세에 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내 마누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라네.
아내가 비록 나 와 혼인을 하기는 하였으나 생활은 여느 수도승 못지않게 청정하다네.”
광덕의 말에 엄장은 무안한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래도 나처럼 아내가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은 가?”
“자네, 내가 아내를 빌려주면 어떻겠는가?”
“이 사람 농담도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이렇게 두 사람은 옥신각신 얘기를 주고받고 광덕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 광덕이 죽었 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놀란 엄장은 광덕의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엄장은 광덕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고 광덕의 사십구일재를 지낸 저녁,
엄장은 광덕 의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부인 저와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인께서 저를 욕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광덕이 이미 떠났고 부인 혼자 어찌 살겠습니까?”
그리하여 결국 광덕의 아내는 엄장의 집으로 짐을 옮겨 새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첫날 밤 엄장은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엄장은 뛰는 가슴으로 이불 속에서 살며시 광 덕의 아내가 아닌 이제 자신의 아내가 된
사랑스러운 여인을 안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엄장을 바라보았다.
“저는 당시의 불심 또한 죽은 남편처럼 깊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속세의 속인들과 마찬가지이군요.
죽은 남편과 저는 십년 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잤지만 남편은 제 몸에 손을 대 기는커녕
손 한번 잡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엄장은 언젠가 광덕이 자신과 부인은 여느 부부와 다르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났 다.
엄장은 자신도 광덕처럼 불법을 공부하였지만 덕이 그에 미치지 못 함을 깨달았다.
“용서 하십시오. 부인, 제 불심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훌륭한 스승을 찾아
열심 히 불법을 공부하여 죽은 광덕의 버금 갈만한 덕을 쌓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엄장은 그 다음날로 원효대사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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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결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