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보문고에서 신년 캘린더를 고르다가 옆 사람들에 밀려
지나가는 젊은 여성과 부딪힌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뒤쪽으로 공간도 많았는데 이어폰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
빠른 속도로 돌진한 이 여성에게도 잘못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를 하였고 자리를 옮겨 다른 코너의 물건을 보고 있는데,
멀쩡하게 서 있는 나를 이 여성이 팔뚝으로 세게 밀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분명히 고의성이 다분했다.
그냥 참았으나 아프기도 하고 팔을 이용하여 고의로 밀친 것이 분명하기에
굉장히 불쾌감이 오래 갔다.
아마 생활신조가 ‘당한대로 갚아준다’ 또는 ‘당하면 배로 갚아준다’ 였나 보다.
세상사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런 식의 손해 보지 않겠다는 경계심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부부관계, 특히 섹스에 있어서는 이런 보복 심리를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
부부싸움을 하고 마음이 상한 경우에 다음날 아침식사를 차려주지 않는다든지,
다음날 늦게 귀가한다든지, 말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화해할 때까지 흔히 일어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런 상황들을 장기화하지 않고 빨리 해결해 간다.
싸움의 근원이 섹스에 있으면 일이 좀 더 커지기 쉽다.
섹스 사이클이 잘 맞지 않는 부부의 경우 두 사람 모두 힘은 들겠지만,
욕구를 더 가진 쪽이 마음 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은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만약 거절을 당하면 굉장한 자존심의 손상을 입는다.
옷을 먼저 벗는다든지 애무를 한다든지 키스를 한다든지 하는 욕구를 표출하면
상대가 이를 알아차리고 따라와 줘야 겸연쩍지 않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거부하면 섹스를 먼저 시도한 쪽에서는 뒷수습이 난감하고
상대에 대한 분노가 생기기도 한다.
30세 C씨는 결혼 3년차 주부다.
돌이 갓 지난 아기가 있고 출산 후 일시적으로 성욕저하가 있었으나
곧 몸은 출산 전처럼 회복이 잘 되었다.
몸매도 거의 돌아오고 성욕도 다시 생겼다.
하지만, 출산 후 1년 이상 도통 남편이 성생활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먼저 집적거려도 보고 야하게 입어 보기도 하고, 급기야 창피함을 무릅쓰고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고 싶다고 말도 해보았다.
하지만 남편은 요즘 일로 스트레스가 많아 성욕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계속 잠자리를 거부했다.
애정이 식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여자로서 끝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한동안 잠자리 전쟁을 하던 C씨는 드디어 남편과의 관계에서 섹스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생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남편의 성욕이 돌아오면서 부부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그간 마음고생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A씨는 무조건적으로 남편의 모든 요구를 거부했다.
자신이 느꼈던 모멸감을 돌려주고 싶었단다.
잠자리에서 남편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이미 당신이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 라거나
‘이미 좀 전에 자위를 끝냈다’ 고 말하며 남편의 감정을 모질게 상하게 했다.
이전에 남편과의 섹스를 포기하겠다고 공언까지 했었는데 이제 와서 남편이 요구한다고
좋아라 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남편이 상처를 받기 시작했다.
소심해지고 발기도 잘 안 된다.
모처럼 성욕이 되돌아오는 듯했는데 김이 새버렸고 아내의 냉담한 반응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서로 다른 방에서 자거나 같이 자도 등을 돌린다.
둘 사이에 짜증은 늘고 사이가 굉장히 나빠 뭔가 해결은 보아야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어디서 풀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이런 결과를 바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남편과 화해하고 먼저 접근해 보라고 해도 너무 창피한 일이라며
먼저 손 내밀지는 못하겠다고 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 부부의 경우에 처음 남편이 성욕이 없던 시기에 자기 처지를 잘 설명하고
부인을 조금만 더 이해시키려 하였다면,
부인이 남편을 조금만 더 너그럽게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자세를 가졌다면,
또 설사 복수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한두 번 거부함으로써
지난 시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도만 보여주고
앞으로 잘해보자 발전적인 다짐을 하였다면, 부부는 출산 후 한동안의 침체기를 거친 후
더욱 탄탄한 부부관계로 거듭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부의 잠자리를 전쟁터로 만들지 말자.
적당한 밀고 당기기는 긴장감을 높이지만, 상처 받았다고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생각은
유아적일뿐더러 서로 마음을 다치고 앙금이 쌓여 부부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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