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슬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총리가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다.
‘요한나 시거다도터’ 총리인데, 그녀는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지지율이 상승한 유일한 정치인으로
동료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2002년 동료 여성과 결혼을 한 ‘레즈비언’으로 알려져 있다.
계속되는 경제위기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아이슬란드를 위해 그녀는 발전된
경제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시거다도터 총리처럼 전 세계적으로 성(性)소수자들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성(性)소수자들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분야는 어디일까?
바로 패션이다.
유행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 스스로를 꾸미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자기사랑 방식이다.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스타일이 비슷비슷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길거리를 장악한 패션이 바로 성(性)소수자들, 즉 게이와 레즈비언의 패션이라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음지에 숨어있던 성(性)소수자들이 양지로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 캐나다 등에서
해마다 ‘게이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꾸준히 개최되면서 다양한 축제 중 하나로 인식된 이 행사 때 게이들은 그동안 억눌렀던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각종 패션도구와 문화적 요소로 표출한다고 한다.
이때 드러나는 그들의 스타일은 빠르게 유행을 이루며 각 나라의 젊은이들의 스타일에
파고드는 것이다.
이런 유행의 물결에 우리나라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20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퍼레이드 때 게이들이 선보인
하얀 뿔테 선글라스는 우리나라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사용하면서 여름에 재고가 없을 정도로
빅히트를 기록했다.
또 게이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지던 원색계열의 의상은 현재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물론, 90년대 후반부터 ‘유니섹스’ 의상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남녀를 구분 짓는 옷차림이
사라진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처럼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은 게이 패션이
유행하고 나서부터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앞에 서 있는 여성에게 가방을 들어주려는 호의를 베풀었다가,
‘괜찮습니다’라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이제 더 이상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와 귀걸이, 주황색의 점퍼와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만으로
여성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시대인 것이다.
게이들의 패션문화가 유행을 만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현대에 들어, 미남의 기준이 선이 굵은 남성적 얼굴에서 선이 가늘고 고운 중성적 얼굴로
변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여자보다 예쁜 얼굴을 가진 남자, 게다가 파운데이션과 파우더를 토닥이고,
눈썹을 다듬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 되면서 성(性)정체성 자체에서 패션을 만들어가는
게이들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행이 된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내놓는 남성복에는 화려한 장식과 색상들이 즐비하고, 다가올 시즌에 앞서
유행을 가늠하는 남성복 패션쇼에는 스커트를 입은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유행처럼 번진 중성적 패션과 문화로 점차 남녀를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질지 모른다.
9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한 남성가수가 새 앨범 컨셉으로 치마패션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었지만, 방송국에서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심의 제재를 가했다고 한다.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걸친 것뿐이었으나 당시의 문화적 시선으로는 남자가 여성의 상징인
치마를 입었다는 것이 게이를 연상시켜 제재가 가해졌으리라.
하지만 게이의 패션이 유행을 선도하는 지금, 그리고 미래에는 남자들의 패션 감각을 멋진
스커트자락을 휘날리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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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질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