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취는 굉장히 유혹적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호감을 이끌어내려면 좋은 향을 풍기는 것이 특효일 정도로
‘향’은 우리에게 매우 민감하게 작용한다.
악취는 기분 나쁜 부패나 악덕을 연상시키고 좋은 향기는 낙천적인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때문에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도 좋은 향수 제조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타인의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들고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향기를 선천적으로
몸에 지니고 태어난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많은 남성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될 것이며, 그로인해 행복한 일생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비가 날아들 만큼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났던 여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18세기 중기, 신강의 위구르 지역 카슈가르(Kashgar/중국이름:喀什)에 존경받는 귀족
‘아바 호쟈’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름답고 독특한 손녀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향비(香妃)였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항상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녀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위구르족에게 국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향기를 품고 아름답게 자라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랐다.
그녀의 나이 스물이 가까워오자 위구르족의 한 추장이 청혼을 했다.
그렇게 정혼(定婚)이 이루어지고 결혼식만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당시 건륭제 때였던
청조가 군사를 일으켜 신강을 정복했다.
청의 군사 총사령관이던 조혜는 향비의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사로잡아
북경으로 보냈다.
카슈가르 정복의 기념으로 황제에게 보낸 기념 선물인 셈이었다.
조혜가 보낸 선물에 건륭제는 무척 기뻤다.
향비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과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풍겨나는 향기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는 향비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아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향에 남기고 온 가족과 정혼자 생각에 황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향비의 첫 번째 거부는 음식이었다.
온갖 산해진미로 차려진 궁중음식에 전혀 손대지 않았던 것이다.
점점 야위어가는 향비를 걱정하던 건륭제는 카슈가르에서 식재료를 가져와 음식을 만들라 명했고,
망향병(望鄕病)에 시달리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궁 안에서 위구르 복장을 입도록 허용했다.
그대로 향비는 그런 처사에 감사할 뿐, 건륭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건륭제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녀를 그저 사랑했다고 한다.
그녀만을 위해 위구르식 집을 지어주고, 전통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게다가 끝내 거부하는 잠자리까지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황태후였다.
황태후는 향비가 황제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있었다.
후궁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며 황제를 꾸짖은 황태후는 향비를 자신의 별실로 불렀다.
황제의 마음을 받아들이라고 훈계하던 태후의 눈에 향비의 앞섶에 꽂힌 비수가 보였다.
황제를 가까이 모시는 사람으로서 비수를 숨기고 있는 것은 큰 대역죄였다.
그러나 향비는 정혼자를 두고 황제와 잠자리를 가질 수 없었기에 비수를 몸에 지니며
황제에게 간곡한 거부를 했던 것이다.
태후는 비수를 지닌 향비에 진노했고, ‘도대체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향비는 처연하게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태후는 환관들을 시켜 그 자리에서 향비를 목 조르게 했는데, 향비가 태후에게 불려갔다는 소
식을 뒤늦게 접한 건륭제가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이미 향비의 숨은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건륭제는 향비의 죽음에 크게 낙담하여 오랜 시간 아파했다.
그는 향비가 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은은하고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는 말로
슬픔을 전하곤 했는데, 실제 향비가 죽자 그 향기마저 사라졌다고 한다.
건륭제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한 황제였다.
그의 여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중 한 명일 뿐인 향비이지만, 그녀의 출생과 슬픈 인생 그리고 몸에서 나는 향기만으로
황제를 매혹시킨 여인으로 꾸준히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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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질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