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국모인 중전의 간택은 매우 까다롭게 진행되는데, 이를 뚫고 그 자리에 오른 여인은
지성과 미모, 인품을 인정받아야 했다.
정순왕후는 어린 나이에 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 국모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세자를 죽이는데 동참하고, 왕위에 오른 세손을 끊임없이 옥죄던
철의 여인 이전에 중전으로 간택된 아리땁고 현명한 한 소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경주 김 씨 오흥부원군 김 한구의 딸로, 열다섯의 나이에 당시 예순여섯이던
영조의 계비(繼妃)가 되었다. 여기에서, 중전 간택에 대한 일화가 전해진다.
영조가 왜 정순왕후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 명의 규수가 최후의 3인으로 남았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규수들은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수놓인 방석을 깔고 앉아 기다려야 했다.
왕이 묻지 않고도 누구의 딸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영조는 한 규수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방석에 앉아 있는 것을 봤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그녀에게 왜 그랬는지 직접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는 다소곳하게 자식이 어찌 아비의 이름을 깔고 앉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누구의 딸인지 왕에게 알리기보다 효녀로 남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영조는 기특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녀가 바로 후에 정순왕후가 되는 김 규수였다.
김 규수를 눈여겨 본 영조는 세 명의 규수에게 자신이 준비해온 질문 두 가지를 던졌다.
질문은 우리나라의 여러 고개 중 가장 넘기 힘든 고개와 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꽃이
무언인지 대답하라는 것이었다.
별 뜻이 없어 보이는 이 질문에 평범한 대답을 한 다른 규수와는 달리 김 규수는
색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녀는 가장 넘기 힘든 고개로 양반들은 잘 알지 못할 ‘보릿고개’라고 대답했고,
아름다운 꽃으로 목화를 꼽았다.
이번에도 영조는 그녀에게 그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보릿고개란,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양반의 자제들은 잘 알지 못하는 이것을 알고 있던 김 규수는 어릴 적 가난하게 살았던
경험이 있었다.
몰락한 양반인 김 한구는 충청도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어렵게 서울로 올라와
벼슬을 얻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화사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목화를 아름답다고 여긴 것은
그 꽃이 사람에게 유익하기 때문이었다.
옷감으로 백성의 추위를 달래주는 목화야말로 꽃 중에 제일이라고 말했다는 김 규수.
영조는 백성의 고통을 알고 그들을 아낄 줄 아는 그녀를 새 중전으로 간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항상 당파싸움의 중심에 서 조선의 르네상스를 지켜내지 못한 여인으로 그려졌던 그녀,
정순왕후는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백성을 생각할 줄 알았던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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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