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랑의 감정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모성애(母性愛)이지 않을까.
자식을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어머니, 자식의 살인죄를 대신 덮어쓰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접해왔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마음 한 편에 ‘역시 모성애는 대단하다’는 감탄이 서리곤 한다.
배 아파 자식을 낳아본 여인이라면 모성애가 생기는 것은 당연할 터, 하지만 우리의 역사 속
많은 여인들은 이런 모성애를 숨긴 채 살아야 했다.
그들은 바로 자식에게 존대하며 격식을 차려야 했던 왕의 어머니들이다.
궁중의 여인으로 사내아이를 낳아 대통을 잇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자식과 살가운 대화 한마디 나눌 수 없었던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모성애조차
마음대로 꺼내 보일 수 없었다.
모든 격식을 차려 엄격하게 아들을 대우해야 했다.
왜냐하면 자라서 한 나라를 통치해야할 그 아들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왕은 어려서부터 근엄하고 남보다 뛰어나야 했으며,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하늘의 아들’이어야 했다.
그 어떤 인간미도 비추어야 하지 않았으므로 어미는 누구보다 엄격해야 했고, 격식에 준해야 했다.
하지만 왕도 결국 사람이지 않은가.
어릴 때는 어미의 따뜻한 품이 그립고, 자신만을 향해 있는 수많은 눈들에서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럴 때 그들은 어미가 아닌 봉보부인을 찾아갔다고 한다.
봉보부인이란, 왕의 유모로 왕에게 자신의 젖을 물린 여인들을 뜻한다.
이들은 종2품의 지위에 오르며, 자신이 젖을 먹여 키운 원자(元子)가 안전하게 잘 자라
왕위에 오르면 녹봉을 지급받아 편히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왕에게 젖을 물릴 유모가 필요했을까.
그 어미가 젖을 물리면 안 되는 것일까.
사실 왕이 태어나자마자 봉보부인의 젖을 마신 것은 아니었다.
어미의 젖은 삼칠일(三七日), 이십일일 동안 마시고 그 이후에 봉보부인의 젖을 마셨다.
아무리 궁 안이라고 해도 중전마마나 후궁들이 가슴을 풀어 헤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아들’이 마실 젖의 주인은 보통 중전이나 후궁들은 아이를 낳기 직전에
대비나 대왕대비가 직접 뽑았다.
이 일은 왕실의 배우자를 뽑는 일만큼이나 까다롭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일단 봉보부인의 후보는 몸이 튼실하게 생기고 병이 없어야 했고, 인품도 온화해야 했다.
또한 젖의 색이 진한 흰색이어야 했고, 음주유무도 중요하게 따졌다.
이런 모든 조건을 충족하여 봉보부인으로 뽑히면 왕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짜거나 신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되며, 남편과의 잠자리도 일절 금지되었다.
원자를 안아야 하는 몸으로 남편을 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젖의 온도차를 줄이기 위해 젖 먹이기 직전, 덥거나 추운 데 있는 것을 금지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다 만족해야 하는 후보들은 대부분 내수사(內需司) 여종들이나
각 사의 여종들 중 선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늘의 아들’인 왕은 그 시대에 천하디 천한 종들의 젖을 먹고 자랐던 것이다.
외로운 궁중생활에서 친어미에게조차 따스한 위로를 받지 못한 어린 원자(元子)들은
자신에게 젖을 내어준 봉보부인에게 어미 못지않은 애정을 느꼈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것이 바로
모성애(母性愛)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한한 애정으로 길러낸 봉보부인에게 원자 또한 어미로서 의지했고 갖은 응석을 부렸으리라.
게다가 유모들은 원자들이 젖을 뗀 이후에도 보모의 자격으로 그 곁에 남게 되는데,
이렇다보니 원자의 어린 시절의 최측근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애틋한 정은 부모자식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왕을 젖 물려 키운 유모라고 면천되고 벼슬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들에게도 끔찍한
고통이 있었다고 한다.
젖을 생산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자신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보니, 원자를 배불리 먹이고 자신의 아이는 제대로 먹이지 못해 먼저 하늘로 보낸
유모들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에게 쏟지 못하는 정을 원자에게 쏟았을 그들의 모성애(母性愛)도 매우 각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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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과 칵테일 한 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