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한사랑병원

-나는 이런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습니다-




저는 국가로부터 의사면허를 받은 지 정확히 39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대부부분의 시간을 어떤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지 깊이 있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채 고도의 전문적인 의학공부에만 몰두해오다가 이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은 약 20년 전부터였습니다.

근래에 대학에서 통섭(Consilience)이란 단어가 화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학병원 전문의 교육과정은 통섭과는 정반대의 환원주의 길을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병원이나 전문의 수련병원들은 제한된 한 분야만 제대로 진료할줄 아는 절름발이 의사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었던 그럴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간 나는 환자에게 훌륭한 의사였는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 제가 “나는 이런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다”에서 내가 원하는 정반대의 의사였는지도 모릅니다.


심장병 전문의사인 William Hablitzel은 자신이 지은 책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에서 “진정한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치유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의사는 모두 경청하는 사람들이다. 진료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다. 의사로서 우리의 임무는 환자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며, 오히려 환자들이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찍이 의학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병을 고치는 것은 환자 자신이 갖는 자연 치유력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말대로 우리 의사는 모든 병을 고쳐주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이나 healer가 아니고, 환자가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을 조금 도와주는 helper에 불과한 힘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인체는 무수한 미생물들로부터 공격의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만약 우리 인체가 가지는 면역기능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항생제를 투여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에이즈가 무서운 이유는 면역기능이 상실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체는 적인 병원체가 몸에 들어오면 정보참모인 수지상세포가 즉시 이를 탐지하여 면역체계에 전달하고 즉시 전투준비에 들어갑니다. 과거에 동해에서 북한 잠수정이 침입해 들어 왔을 때 이를 지키는 업무를 맞고 있는 동해안 경비병은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업무와는 아무 상관없는 지나가는 택시 기사가 경찰에 신고하여 알게 된 어이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인체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병원체가 아닌 다른 질병이 생기면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종류의 항상성(homeostasis)이 발동됩니다. 이러한 기능이 없다면 아무리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해도 병이 치유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체의 자연치유 능력 때문에 병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며, 혈관이 서서히 막히는 경우에는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혈관이 생겨서 생명을 유지시킵니다. 지금 저도 하느님이 주신 이러한 자연치유력 덕분에 고통 없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무슨 치료를 해서 제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 이러한 인체의 면역기능과 자연치유력을 이해하고 이를 도와 병으로부터 회복되도록 돕는 helper에 불과합니다. 쉽게 말하면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짐꾼이 무거운 짐을 리어카에 싣고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을 때 리어카 바퀴에 걸린 돌이나 장애물을 치워주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장애물을 잘 치워주어도 짐꾼이 리어카를 스스로 끌고 올라갈 능력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의 최고 대학인 도쿄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교수 한 분이 자기가 생을 마감할 순간이 오면 자기를 절대로 도쿄대학병원에 입원시키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거룩하고 장엄한 인생정년퇴임식을 망자를 물건 취급하는 의사들이 있는 도쿄대학병원에서 치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환자가 생을 마감할 때 한 생명의 거룩하고 장엄한 인생퇴임식을 맞이하여 경건히 기도하는 마음 자세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영안실로 옮기세요”라고 말하고 가버리는 의사가 저는 참으로 싫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근래에는 집안 어른은 장모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장모님이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시려고 할 때 간호사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는 혼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 천당 문을 활짝 여시어 저의 장모님을 받아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저의 장모님의 진료를 담당하는 교수를 입원 중에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상태가 어떠하다는 설명을 전화로라도 들은 적이 없어 몹시 서운했습니다. 그러나 불평 한마디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라고 티낸다고 말할까봐서요. 그리고 저의 장모님 담당 교수도 전공의도 학교 다닐 때나 인턴 때 저에게 배운 사람들이니까 저에게도 책임이 있으니까요. 또한 저도 지금까지 그분들처럼 그래왔고, 소아청소년과에 근무하는 저의 후학들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중환자실 간호사 한 분이 전해준 말에 의하면 저의 장모님의 질병을 치료한 적도 없고 현재 저의 장모님 치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진료과의 교수 한 분이 저 없을 때 몇 번 다녀갔다고 합니다. 저는 그 교수에 대해 영원히 감사한 마음을 간직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습니다. 즉, 저를 치료하는 의사는 다음과 같은 의사였으면 좋겠습니다. (1)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의사였으면 합니다. (2) 육체적 질병치료에만 집착하지 말고 환자가 받는 심적 고통을 함께 치료하는 의사였으면 합니다. 저는 입원해 있는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어느 의사도 좌절하고 있는 저의 입장을 헤아려 주지 않은 것 같아 서운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시여! 육체적 질병 치료에만 전념하지 마시고 환자의 마음도 함께 치료하는 의사가 되십시요! 소아청소년과 의사 선생님들이시여!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들이 병원에서 주사주고 피빼고 아픈 검사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무서움과 공포감에 떨고 있는지 생각해보셨나요? 천사같은 어린이들게 병원공포감을 없애주도록 노력하고 어린이들에게 심리적 안도감을 주기 위해 의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연구하십시오. 그외 모든 진료과 의사 선생님들이시여! 여러분이 치료하는 심각한 육체적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 아시나요?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요? 그런 조언은 의사 아닌 사람도 누구나 하는 말입니다.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으니까 의사를 찾은 것인데 그런 대답을 하면 환자는 더욱 우울해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환자의 마음에 감정이입하여 진심으로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필요하다면 약으로 도움을 주십시오. 의사 여러분이 가진 능력은 망망대해가 펼쳐진 끝없는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작은 조약돌 하나에 불과합니다. 겸손하고 친철하고 따뜻하고 환자의 말을 경청하시고 환자의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병든 마음도 함께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의사가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독서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3) 더 욕심을 내자면 제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생을 마감할 순간에는 환자인 제 옆에서 거룩하고 장엄한 제 인생 정년퇴임식을 지켜봐주시고 저의 가족과 함께 영혼을 위로해주며 영원한 안식을 취하도록 기도해 줄 수 있는 의사였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제가 너무 지나친 욕심을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희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제 정들었던 직장의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퇴임 후에는 현직으로 있었을 때의 신분 때문에 누렸던 기득권과 대접을 흐르는 강물에 남김없이 버리겠습니다. 누가 무시해도 그러려니 하고 살겠습니다. 제가 병원에 환자로 와서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대학교 다닐 때 저에게 배웠던 대부분의 의사들이라도 인사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살겠습니다. 지금 저의 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심장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저의 제자들은 그동안 제가 학계에 쌓아놓은 영향력 때문에 그리고 저의 제자이기 때문에 대접과 인정을 받고 있지만, 곧 제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자유로히 날아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제자들도 점차 저를 멀리하게 되겠지요. 서운해할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나중에 저와 같은 길을 걷게 되겠지요. 요즘 세상에 세한지정(歲寒之情)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지금 저에게 가장 간절한 희망은 정년퇴임 후 인생후반기 동안 저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허락할 때까지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진료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찾아오는 환자가 적어 수익을 못 올리면 무보수로라도 저를 써주는 병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저를 생각할 때 초라하고 처량하고 비참하지만 이것이 현재 저의 자화상이고 실제 처한 처지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요. 제가 전남대학교병원에 재직 중일 때 전남대학교병원장에 두 번이나 출마하여 떨어진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잘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신 분들과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단순히 질병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계속 기도드리겠습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치료하는 따뜻한 의사, 나의 힘과 능력이 극히 미약하나 환자와 그 부모님에게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와 평화를 주는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후학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대학을 떠나리라.



흐르는 음악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9번 4악장입니다. 얼마 전(2014년 1월 20일)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1914년 1월 20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습니다. 카라얀의 뒤를 이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을 오래 동안 이끌다가 사이먼 래틀 경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근래에는 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들의 멤버 중 최고 연주자들을 한시적으로 초청하여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매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말러 교향곡 등 주옥같은 대작들을 연주하여 세계 음악 펜들의 찬사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지휘자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 자료 중에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지휘한 영상물이 있습니다. 아바도는 그 연주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지휘하면서 지금 흘러나오는 마지막 4악장 끝에서 작곡가 말러가 지시한대로 현악기들만의 연주로 이루어진 선율이 “죽어가듯이” 점차 약해지다 완전히 사라진 후 너무 감격에 겨워 지휘봉을 한참 동안 가슴에 안고 있다가 두 손을 앞으로 내려 서로 잡은 후 오케스트라 단원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공연장은 잠시 침묵이 감돌다가 마침내 관람객들이 일제히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말러 교향곡 4악장을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조용히 날개를 접는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말러 교향곡 4악장처럼 불이 서서히 꺼져가듯이 조용히 편안하게 눈을 감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서거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