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한사랑병원

 모임을 끝내고 귀가하자 남편이 물었다. 

'다 나왔어?' 

멤버들이 모두 참석했냐는 뜻이다. 

예의 관심이다. 

한 명이 안 나왔다고 했더니 이유를 묻는다. 

'내일 남편 산소에 가는데 음식 장만해야 한대.





' 그런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이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다. 



'뭐하러 가? 거긴 뭐하러 가냐고? 

살았을 때나 잘하지 이미 죽어버린 남편 무덤엔 왜 가?

' 이건 이웃들이 흔히 할 수 있는 수준의 참견이 아니다. 

완전히 분기탱천한 모습이라 듣고 있는 내가 

무안하고 미안해진다. 



마치 내가 혼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남편이 그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지 만 

남 일에 그렇게까지 역정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한다. 

조용히 옆구리를 치고 들어갔다.

'나는 가도 돼?'

눈길이 다른 쪽에 가 있던 남편, 

휙하니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대꾸한다.

'어디? 시집?'

'......'



남의 죽어버린 남편 대신 화를 내주느라 

몹시 흥분한 우리 남편, 

천지분간을 못한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시치미 뚝 떼봤다.

'응, 시집.' 



나중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자신의 산소에 찾아가도 되느냐는 질문이었는데 

사정없이 진도를 빼버린 우리 남편,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한다.

'가도 돼.'



도대체 수습이 안 된다. 

완전히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 것 같다.





난 아직 한 번도 남편 사후의 일(재혼 등)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또 우리 남편이 나를 그처럼 나쁜 아내로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난데없이 시집이라니!



 

그 이웃은 남편과의 사이가 원만하질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이 불행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이기적인 아내는 남편의 아픔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기만 생각했다. 

조금만 불편해도 참질 못했고 눈꼽만큼이라도 

자신의 체면을 구기는 행동을 하면 

길길이 뛰고 난리가 났다. 





남편의 인생은 없었다. 

남편은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남편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애닯아 하고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주변의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엔간히 볶아야지. 명대로 살 수가 없었어.'

그녀의 남편이 그렇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건 

그녀가 날마다 들볶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남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게 모두 

그녀 탓인 양 여겼다. 





그런데 남편 산소에 찾아가기 위해 

음식장만을 한다니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났던가 보다. 

살아 있을 때 잘했어야지, 

이미 죽어버린 남편은 뭐하러 찾아가냐는 것이다. 





남편은 그녀가 바리바리 음식을 장만하여 싸가는 것도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남편 죽음 이후의 그녀의 행보가 영 마뜩치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흥분하여 내가 묻는 말의 내용이 

뭔지도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남편의 말은 틀리지 않다. 사는 동안 서로 잘해야지 

죽고나서 잘하면 무슨 소용인가.인지상정이다. 

자신의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지지리도 못하던 남자가 사별 후 

날마다 눈물 찔끔거리며 시시때때로 

무덤에 찾아간다면 나도그렇게 말할 것 같다.

'뭐하러 가? 살아 있을 때 잘하지.'



이젠 배우자 산소에 가는 일도 

당사자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할 때가 왔나 보다. 

만일 자신의 무덤에 찾아올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내 남편에게, 내 아내에게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혹시 나의 배우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남편(아내)에게 정중히 물어 보시라.

'당신 무덤에 찾아가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