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는 횟수가 거듭되자 나중에는 이러다가 죽겠다 싶었습니다.
포항이 고향인 선임은 단 한 번도 봐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맞다가 속으로 “이 경상도 새끼가!” 하는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당시는 광주사태 이후라 지역 간의 골이 깊었을 때였습니다.
그날, 얼마나 뒤통수를 맞았는지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신문지의 글씨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프기도 했지만 뒤통수를 거듭해서 맞으면 자연히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마귀 같은 선임은 뒤통수가 얼얼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를 앉혀놓고 위로를 하기는커녕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도 오늘과 전과 동! 알았제?”
“......”
“이 자식 봐라? 알았제?”
“......”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맞으면 정말 눈알이 튀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저는 바로 위 일병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밤에 사무실에서 타자연습 좀 하게 해 달라고.
그날 밤 저는 밤이 새도록 타자 연습을 했습니다. 한 숨도 못자고 밤을 꼬박 새워 타자연습을 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맞아 죽게 생겼는데 잠이 오겠습니까? 신경을 곤두 세워서 밤새워 연습을 하다 보니 오타 나오는 비율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윽고 날이 밝았습니다. 비록 한 숨도 자지 못했지만 오늘은 어제만큼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출근을 했고 저는 타자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선임도 제 옆에 앉았습니다.
“박 이병!”
“네! 이병 박완규”
“연습 많이 했제?”
“......”
귀신같은 선임은 어젯밤 제가 한 숨도 자지 않고 타자연습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시작해 볼까?”
“네! 이병 박완규”
그날도 맞기는 뒤지게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전날처럼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방법이 우리부대 역대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타자를 가르치는 전통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빠르게 치는 것도 중요했지만 정확하게 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던 그 당시의 타자기. 그렇게 죽을 만큼 맞아가면서 타이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노력 때문에 누구 못지않게 빠르고 정확하게 타이핑을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고생이 지금에 와서 글을 쓰는 제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는 죽일 만큼 미웠던 경상도 선임이 지금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포항이 고향이었던 고재욱 병장님, 고맙습니다.
저의 타이핑 속도가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어떻게 많은 내용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혹시 무엇인가를 처음 배우고 있는 분이 계시면, 오늘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기초를 철저하게 익혀 두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렇게 기초를 튼튼히 익혀두면 그 기본기가 언젠가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밖으로 삐져나와서 제 솜씨를 뽐낼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기초나 기본은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습니다.
네 번째 책을 쓰고 있는 요즘, 눈물을 흘리면서 배웠던 타자기, 괜한 경상도 고참을 “이놈을 죽여 살려?”하며 이를 갈고 배웠던 타자기였지만,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지금 제가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그동안 써놓은 수천 페이지의 글을 보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군 생활을 추억하였습니다. 사람이나 재능이나 기본과 기초가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남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고운 하루 되십시오.
사랑합니다...
박 완 규 올림
| 
.gif)
총 등록글 : 4292건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 하지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