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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모피를 두른 엘렌 푸르망'과 '자화상'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1640년 5월30일 숨을 거두면서 누드화 한 점을 아내에게 남겼다.

절대 팔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였다.

17세기 유럽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가 사적으로 보관하며 평생 아꼈던 이 그림의 제목은

 '모피를 두른 엘렌 푸르망'이다.

 루벤스가 사랑한 이 그림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파리의 루브르, 마드리드의 프라도와 함께 유럽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박물관.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에 자리한 이곳에서 그 누드화를 볼 수 있다.

루벤스는 풍만한 나신 위에 모피만을 걸친 여인을 그렸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져진 그의 자화상도 이곳에 전시돼 있어 여전히 엘렌 푸르망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엘렌 프르망은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벨기에의 도시 안트베르펜은 루벤스가 저택을 짓고 작업장을 만든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제자와 조수들과 협업해 대량으로 작품을 생산했다.

엘렌 푸르망이 이곳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 것은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의 동생인 페르난도 추기경의 표현이었다.

루벤스는 1630년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

결혼 당시 루벤스는 53세, 엘렌은 16세였으니 무려 37살 차이가 났다.

그는 첫 부인인 이사벨라 브란트와 사별하고 4년을 홀로 지내다 엘렌과 결혼했다.  

어린 아내 엘렌에 대한 루벤스의 사랑은 '모피를 두른 엘렌 푸르망'에 잘 나타난다.

신화를 다룬 루벤스의 다른 작품과 달리 이 그림은 사적이고 은밀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갓 목욕을 마치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엘렌은 따뜻하고 관능적인 시선으로 37살 연상의 화가를 바라보고 있다.

루벤스가 결코 팔지 않았던 이 작품은 그의 사후 엘렌에게 상속됐고 엘렌 역시 다른 작품은 팔아도 이 그림은 계속 소유했다고 한다.

엘렌이 등장하는 것은 이 작품만이 아니다.

루벤스는 결혼 후 성모 마리아, 비너스 등을 엘렌의 모습으로 그렸다.

그에게는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가 두 번째 아내로 귀족이 아닌 중산계층 출신의 엘렌을 선택한 것은 나이나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화가로 성공을 거두고 명성과 부를 쌓는 동안 그는 귀족들의 허영과 이기심을 목도했고

이 때문에 시골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배우자를 원했다고 한다.

바람대로 루벤스는 엘렌과 단란한 노년을 보냈다.

그는 1640년 심장발작으로 사망했으니 엘렌과의 결혼 생활은 10년이었다.

이 기간 그와 엘렌은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를 뒀고 막내는 루벤스가 사망한 뒤 태어났다.

 죽기 얼마 전까지 엘렌과 사랑을 불태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