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화를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극명한 차이 중 하나가 '주식(主食)'의 차이다.
쌀밥을 주식으로 삼는 동양과 빵을 주식으로 삼는 서양, 이 주식의 차이는 각각 벼와 밀이란 작물을 선택한 고대의 역사부터 출발해 각각의 문화와 삶의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밀은 쌀보다 더 먼저 심기 시작한 작물로 고대 중동, 이집트 등 초기 문명이 발생한 고온 건조한 곳에서 많이 심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도 밀을 길렀으며 특히 한반도에서도 북부지방에서는 밀과 함께 기장, 조, 보리 등 다양한 작물을 함께 길렀다.
 | 건조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밀(사진=위키피디아) |
동양에서 쌀이 다른 작물들을 모두 밀어내고 주요 생산작물로 등극한 것은 삼국시대,
주식으로 자리를 완전히 잡은 것은 고려시대나 가서 이뤄진 일로 알려져있다. 동양에서도 처음부터 '밥이 보약'은 아니었던 셈이다.
원래 쌀은 원산지가 인도와 동남아시아 일대로 알려져있으며 아열대성 작물로 많은 물과 뜨거운 태양, 비옥한 토지를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여기에 막대한 노동력이 추가로 들어가면 밀보다 월등한 생산량을 보여준다. 현재도 동일한 1헥타르(ha) 면적에 벼를 심으면 평균 4.5톤(t)의 쌀을 수확하지만 밀은 3.5톤을 수확하는데 그친다고 한다. 전 근대시대에는 훨씬 차이가 심했으며 보통 10~20배 정도 수확량 차이가 났었다고 전해진다.
 | 여름 계절풍인 몬순(monsoon)이 불어오는 지역(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그러다보니 보통 쌀 재배가 가능한 몬순이라 불리는 계절풍 지역에 놓은 동아시아 지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쌀이 다른 작물을 밀어내고 주식으로 자리잡았다. 단위면적당 많은 수확량은 곧 엄청난 인구부양력으로 연결됐고 중국과 동남아, 동북아 일대가 서유럽에 비해 오늘날에도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쌀의 영향이 크다고 해석된다. 그러면 유럽에선 왜 밀이 더 선호됐을까? 유럽에서도 18세기에 계몽주의 학자들이 생산력이 막대하다는 이유로 쌀농사를 권장한 적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쌀도 마냥 장점만 가진 작물은 아니다. 건조기후에서도 잘 사는 밀에 비해 쌀은 항상 논에 물이 차 있어야한다. 이것은 끊임없는 치수사업과 수리시설 건축, 보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여기에 모판을 기를 때부터 모내기, 잡초제거, 추수철 등 가을걷이가 끝날 때까지 대량의 인력이 끝없이 소모돼야하는 노동집약적인 작물이다. 쌀 미(米)자가 88번 손이 간다고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허튼 소리만이 아닌 셈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유럽의 여름은 남부지역은 뜨겁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북부지역은 서늘하고 건조한 해양성 기후를 보이기 때문에 벼가 여름을 견디기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남는다해도 훌륭한 소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단위 면적당 소출이 높다고 심기엔 난제들이 많았던 셈이다.
 | 이탈리아의 쌀요리인 리조또(사진=위키피디아) |
물론 유럽에서도 쌀농사를 아예 안 짓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쌀을 재배하며 리조또와 같은 쌀요리에 주로 쓰인다. 주 소비지인 밀라노 등 부유한 지역에 팔기 위해 가난한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내기 노동력으로 고용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스페인, 그리스 등 지중해성 기후 지역을 가진 남부지역에서도 각종 별미의 재료로 기르고 있다.
결국 각 지역의 기후, 토질, 노동환경 등 다양한 조건에 맞춰 쌀과 밀은 선택된 셈이다. 이 두 작물은 자신을 선택한 지역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쌀을 선택한 지역들은 노동집약적인 성격을 갖추다보니 인구가 밀집해사는 것이 익숙한 사회가 됐으며 지역주민들간의 상부상조나 화합을 중시하게 됐다고 한다. 이에 비해 개별농장에서 주로 가축과 혼합경영을 하게 된 밀농사 지역들은 쌀문화 지역들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발달하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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